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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엄경선,바람으로 시작하는 설악의 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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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세상으로 나서는 첫 마음처럼...
엄경선]]></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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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1 Mar 2010 08:24:49 +0900</pubDate>

					
						<item>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살신성인 하나호 유정충 선장 : 설악신문 창간 20돌 특별기획 [설악 20년을 찾아서]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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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살신성인 하나호 유정충 선장 : 설악신문 창간 20돌 특별기획 [설악 20년을 찾아서]  아들 승열씨 항만물류전문가로 박사학위 앞둬 부인 김영희씨 속초 떠나 식당 일로 생활 … “최소한 어머니 의료혜택이라도…” 
&nbsp;       유족들 살아온 이야기  
&nbsp;
지난 2월 7일 오후 고 유정충 선장의 부인 김영희씨와 아들 승열씨를 인천 서구 원당동 승열씨 자택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속초고를 졸업한 외아들 승열씨(40세)는 중앙대를 희망했으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부산 해양대학교에 진학했다. 1990년 승열씨의 입학식을 하루 앞둔 3월 1일 해난사고가 일어났다. 해양대 물류시스템공학과.......]]></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5:48:20 +0900</pubDate>
							<tag><![CDATA[]]></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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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전국어민장 거행된 3월9일 어업인의 날로…”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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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전국어민장 거행된 3월9일 어업인의 날로…”  
설악신문 창간 20돌 특별기획 
‘설악20년을 찾아서’&lt;1&gt; 살신성인 고귀한 희생, 하나호 유정충 선장 속초시·수협, 정부에 건의…“어업인 표상” 올해도 추모식…“추모 기념사업 체계적으로” 
&nbsp;         1990년 5월 28일 ‘주민을 위한 신문’으로 세상에 나온 설악신문이 올해로 창간 20돌을 맞는다. 20년 전 설악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본지는 창간 20돌을 맞아, 특별기획으로&nbsp; 올해 20주년을 맞는 그때 그 일들을 되돌아보고 관련 인물과 단체들을 만나 현재의 상황과 과제를 전하는 ‘설악, 20년을 찾아서’를 연재한다. 그.......]]></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5:46:44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속초,어민장,유정충선장]]></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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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속초 오징어 이야기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35>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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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35&gt;- 속초 오징어 이야기   “청호동은 국내 최대의 오징어 건조지” “중앙시장은 최고의 오징어시장” 명성 
&nbsp;         속초의 대표적인 특산물이 무엇일까. 지금은 다르겠지만 한때는 오징어가 대표적인 속초 특산물로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치렁치렁 매달린 오징어 덕장이 속초의 상징으로 떠오르던 시절이었다. 항포구마다 어획된 오징어가 넘쳐나 많은 서민들이 오징어 어획과 건조, 유통으로 먹고 살았다. 지금 오징어잡이는 연근해와 원양 모두 시들하고 1백여개가 넘던 오징어건조업체도 20.......]]></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5:45:18 +0900</pubDate>
							<tag><![CDATA[속초,오징어,중앙시장,아바이마을,엄경선]]></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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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속초 실향민의 생활과 문화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34>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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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34&gt; - 속초 실향민의 생활과 문화   고향사람끼리 모여 마을 이뤄…망향동산서 망향제 지내 연날리기·북청사자놀음·함흥냉면 소개 
&nbsp;         올해는 6.25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이십대 청년 때 피난 내려온 실향민이 이제 팔십 노인이 되어 버렸다.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났다. &nbsp; “늦어도 칠일이면 돌아오마 굳은 약속 / 마지막 만져보고 되 돌아 설 때 / 어두운 등불 밑에 떨고 서 있는 / 부모 형제 처자들의 처량한 모습 / 가슴깊이 간직한 채 홀홀 단신 / 험한 파도 가름짓고 눈보라 헤쳐가며 /남한 땅에.......]]></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39:49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속초,실향민,망향제]]></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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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속초의 이산가족 이야기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33>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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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33&gt; - 속초의 이산가족 이야기  &nbsp;혈육 찾는 속초 실향민 안타까운 사연 귀순 북한군 운전병 “어머니 결혼사진 한 장만 갖고 왔더라도…” 
&nbsp;       &nbsp;
1971년 8월 20일 판문점에서 남북적십자 간에 이산가족 상봉과 생사확인을 위한 첫 실무접촉 결과, 9월 22일 자유의 집과 판문각을 잇는 남북직통전화가 처음으로 가설되었다. 결국 수차례의 예비회담을 거듭하여 다음해인 1972년 8월 30일 평양에서 역사적인 첫 남북적십자 본회담이 열렸다. 
&nbsp;이 와중에 남북한 직통전화의 첫 통화자인 북한적십자 판문점 상설.......]]></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37:01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속초,실향민,최봉춘,최영춘]]></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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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동해안 석호를 찾는 백조(고니) 이야기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3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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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32&gt; - 동해안 석호를 찾는 백조(고니) 이야기  화진포호에 백조 3백여 마리 수십년만에 목격 희귀종 ‘흑고니’ 청초호에서 확인 “경사났네” 
&nbsp;      
&nbsp;   흔히 백조로 불리는 고니는 길조로 알려져 있다. 백조가 많이 오는 해는 풍년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언가 좋은 일이 많을 거라며 백조가 오기를 기다린다. 백조는 기러기목 오리과에 속하는 고니와 큰고니, 흑고니를 말하는데, 10월 하순에 우리나라에 와서 월동을 하고 이듬해 4월경 시베리아로 돌아가는 겨울철새로 천연기념물 제 201호로 지정되어 있.......]]></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35:36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고니,흑고니,화진포호]]></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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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설악산 반달곰 ‘웅녀’의 죽음 2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31>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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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31&gt;&nbsp; - 설악산 반달곰 ‘웅녀’의 죽음 2   반달곰 웅담·살코기 공매처분…밀렵꾼 죄책감에 자수 
&nbsp;      
&nbsp;   설악산 반달곰 웅녀의 죽음을 특종 보도한 경향신문에서는 반달곰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우리나라 반달곰은 한국전쟁 전에는 웬만큼 높은 산에 많이 서식하고 있었으나 전쟁의 영향과 산림 황폐, 남획 등으로 지금은 거의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산림청은 지리산에 34마리, 설악산에 11마리, 오대산과 조령산에 각각 4마리 등 모두 57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34:52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설악산,반달곰,웅녀의죽음]]></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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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설악산 반달곰 ‘웅녀’의 죽음 1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30>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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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30&gt; - 설악산 반달곰 ‘웅녀’의 죽음 1   1983년 설악산 마지막 반달곰 끝내 회생 못해 
&nbsp;         &nbsp;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야생동물은 무엇일까. 88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랑이는 멸종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가슴에 흰색 반달무늬가 있다 하여 반달가슴곰 또는 반달곰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야생곰은 지리산에 5마리 정도만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리산에 반달곰을 방사하여 야생에 적응시켜 멸종위기의 반달곰 복원 시도는 실패를 거듭하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야생동물을 손.......]]></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27:16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설악산,반달곰,웅녀의죽음]]></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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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40년 이상 기다린 속초 고속도로 이야기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29>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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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29&gt; - 40년 이상 기다린 속초 고속도로 이야기   동해고속도 50여km 구간 추진에 45년 걸려 1970년 계획 발표, 3년 후 착공 앞두고 보류 
&nbsp;       &nbsp;  
&nbsp;
지난 11월 27일 양양 현남에서 하조대까지 동해고속도로 15.2km 구간이 개통되었다. 그리고 하조대~설악 12.42km, 설악~속초 8.06km 구간이 2015년까지 완공되면 양양~춘천~서울로 이어지는 동서고속도로와 연결될 예정이다. 
&nbsp;2015년 속초에 꿈에 그리던(?) 고속도로가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 속초에서 서울, 속초에서 강릉까지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것이.......]]></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25:01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동해고속도로,동서고속도로]]></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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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1974년 고향심기운동, 속초를 실향민 보금자리로  - <기획>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28> ]]></title>
							<link>http://hisokcho.com/11008196363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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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lt;기획&gt;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28&gt; - 1974년 고향심기운동, 속초를 실향민 보금자리로   삭막하던 속초, 점차 따뜻한 숨결 감돌아 공원 조성·가로수 심기…인기가수 하춘화 속초 노래 불러 
&nbsp;         &nbsp;
1963년 9월 26일자 조선일보에는 “또순이의 기항지, 쓸모없는 관광바람 설악으로 불어가고”라는 제목의 속초 풍물기행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서는 속초는 제주도와는 또 다른 삼다지(三多地)로 이름이 나 있다고 전하고 있다. 거리마다 또순이 다(多), 집집마다 견다(犬多), 길가에 분다(糞多)라 하여 삼다(三多)라는 것이다. 이 웃지 못.......]]></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18:29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하춘화,속초에심은사랑]]></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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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68해일,속초항 개항 이래 초유의 재난 속초 1만여 이재민 발생, 수백척 선박 파손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27>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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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27&gt; - 68해일,속초항 개항 이래 초유의 재난 속초 1만여 이재민 발생, 수백척 선박 파손   설악산에서 7명 사망 조난사고까지 발생 
&nbsp;       1968년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불행한 한 해로 기억되고 있다. 남북한의 무장충돌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그해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기습을 목표로 서울로 침투했으며, 이틀 후인 1월 23일 동해에서 미해군 ‘푸에블로호’가 피랍되었다. 그해 11월 울진 삼척에 무장공비 1백여 명이 침투하여 산간지대의 무고한 양민들이 죽음을 당했다. 동해안 해상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16:3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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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수산도시 속초의 비극, 1962년 해난사고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26>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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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26&gt;&nbsp;- 수산도시 속초의 비극, 1962년 해난사고  ‘부실 방파제’ 최악의 해난사고 키워 제2방파제 1990년에야 완공…어민들 희생, 수산도시 성장동력 발판 
&nbsp;      수복 후 속초는 수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하였다. 명태와 오징어잡이가 성황을 이뤄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동해안의 대표적인 수산항구로 자리 잡았고 급기야 1963년 강원도에서 네번째 시로 승격되었다. 속초가 시 승격을 통해 자리 잡기까지에는 거센 파도와 맞서 싸운 어민들의 희생과 가족들의 애절한 눈물과 고통이 숨어 있었다. 1950년대 말 영세한 어.......]]></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15:03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방파제사고]]></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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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프리랜서 칼럼 / 설악로데오거리 완성 이후 던져진 숙제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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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프리랜서 칼럼 / 설악로데오거리 완성 이후 던져진 숙제  
&nbsp;       오랜 공사 끝에 시내 거리가 새롭게 단장되었다. 그동안 공사 때문에 장사를 하지 못해 울상이었던 상인들의 주름살도 펴졌다. 지금 설악로데오 거리 조성에 대해 많은 평가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냉정한 평가를 통해 보완할 것은 보완하고 새롭게 계획할 것은 계획해야 한다. 사람들은 로데오거리 조성으로 도심공간이 쾌적하게 바뀐 것을 반기면서 또 한편으로는 도심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1백70억원이라는 막대한 사업비가 투입된 사업에 경제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실향민문화 테마공간 조성.......]]></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14:29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속초,로데오거리,실향민문화]]></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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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수복 후 설악산 다시 세상맞이-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25>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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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25&gt; - 수복 후 설악산 다시 세상맞이  1955년 한국산악회 학술등반대 처음 입산 관광개발 노력으로 10실 관광호텔 건립 
&nbsp;         &nbsp;
해방 후 38이북 지역으로 접근이 불가능했던 설악산은 한국산악회 설악산 학술조사 등반대의 활동으로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산악회의 학술조사 등반대는 1955년 8월 18일부터 28일까지 10일간의 일정으로 6.25 때 수복된 설악산과 동해안 일대를 답사했다. 등반대는 단장에 홍종인, 부단장에 조○삼, 이숭녕, 지질 광물반에 옥승식, 생물반에 이민재, 약종(藥種)에.......]]></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13:51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속초,설악산,설악산관광호텔]]></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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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4.19 전후로 속초 양양서도 데모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2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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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24&gt; / 4.19 전후로 속초 양양서도 데모  중·고생들 민주주의 수호 앞장서 한일회담 반대, 고교생 거리 시위도 
&nbsp;         &nbsp;
수복지역이라 기본적인 민주주의조차 부정되는 정치 현실을 숨죽이고 지켜보던 양양과 속초에서도 1950년대 말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1958년 보안법 개악 반대 데모였다. 1958년 12월 24일 자유당 단독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세력을 통제하기 위해 국회에서 신국가보안법을 경위권을 발동하여 단독 처리하였다. 이 처리에 앞서 11월 30일부터 속초지역에서 자.......]]></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13:15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반정부데모]]></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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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납북피해자 지원, 어디까지 왔나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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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납북피해자 지원, 어디까지 왔나  국민권익위, 법률 개정·피해자 지원 확대 권고 진실화해위, 고성·속초 피해자 전수조사 결과 내년초 보고 납북 피해자 보상금 신청 미미…아야진 1명 지급대상 확정 
&nbsp;         &nbsp;
지난 7월 30일 북한수역을 침범해 나포되었던 연안호와 선원 4명이 30일만에 극적으로 돌아왔다. 남북한 관계 악화로 억류가 장기화될까 노심초사 온 국민이 가슴을 졸였는데, 다행히 큰 탈 없이 무사히 귀환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9월 26일부터 3일간 금강산에서는 2년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지난 1987년 서해 백령도에서 피랍되어 생이별한 동진호 선.......]]></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12:41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속초,납북피해자,납북피해자지원]]></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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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수복된 고성과 속초의 이모저모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2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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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23&gt;- 수복된 고성과 속초의 이모저모  속초 명태잡이 호황 전국서 사람 몰려 
&nbsp;       수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958년 10월 21일, 나중에 민주공화당 대변인과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는 동아일보 신동준(申東峻) 정치부기자는 수복지구 강원도 고성군과 속초읍을 시작으로 ‘팔도강산, 발가는 대로 붓가는 대로’라는 연재 기행문을 시작하였다. 
&nbsp;기자가&nbsp;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고성군 최전방 마을인 명파리. 간성에서 약 40리 북상하여 민간인 저지선을 지나 다시 20리가량 북상하여 ‘입주영농특별허가증명서’를 발.......]]></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11:58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명태잡이호황,속초]]></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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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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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이승만 대통령과 속초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2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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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22&gt; - 이승만 대통령과 속초  대통령 지지가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 
&nbsp;         &nbsp;
수복된 속초에 대통령이 찾아왔다. 1953년 11월 8일 휴전협정이 이뤄진 지 4개월만에&nbsp; 대한민국 최고 수장인 이승만 대통령이 수복지구를 시찰하러 경비행기를 타고 왔다. 이날 이승만 대통령의 속초 방문은 수복지구의 행정권 이양을 촉구하는 정치적인 행보였다. 이 대통령이 도착한 대포리 비행장에서는 수복지구 행정권 이양을 촉구하는 양양군민 민중대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민정기관의 정부이양, 속초수복지 민중대회서 절.......]]></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02:41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이승만대통령,속초]]></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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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수복된 설악권, 황무지서 새 출발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2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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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21&gt; - 수복된 설악권, 황무지서 새 출발  교실 없어 칠판 들고 양지로…교사 부족 휴교 중앙시장 공중변소 부족 주민 불편 
&nbsp;         &nbsp;
양양과 고성, 속초의 이름이 다시 신문에 거명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으로 수복된 이후였다. 한국전쟁 전에는 양양 38선 근방에서 발생한 남북한 교전상황이 기사의 전부였다. 양양과 고성지역은 1950년 10월 수복되고 다시 공방 끝에 다음해 6월 재수복되었다. 이에 8월에는 유엔군 사령부가 관할하는 군정이 실시되었다. 1954년 11월 행정권이 우리정부에 넘어오기 전까지 양양.......]]></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4:01:09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설악권,중앙시장공중변소]]></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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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항일의 고장, 부끄러운친일의 기록<3>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20>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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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20&gt; / 항일의 고장, 부끄러운친일의 기록&lt;3&gt;  비행기 헌납운동 동원…열렬한 지원병 환송 
&nbsp;       1938년 8월 10일, 강원도회(江原道會)에서 도의원들은 만장일치로 비행기 한 대를 헌납키로 가결하고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강원도의 이름을 딴 해군정찰기 ‘강원호(江原號)’ 헌납운동은 국방헌금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었는데, 강원도의원과 강원도 각 시군이 중심이 되어 강원도민의 고혈을 짜내는 운동으로 펼쳐졌다. 양양지역에서도 맹렬 친일인사들을 중심으로 강원호 헌납운동이 전개되었다. 
‘강원호’기 건.......]]></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3:59:59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양양,친일,강원호]]></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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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항일의 고장, 부끄러운 친일의 기록<2>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19>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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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19&gt; 항일의 고장, 부끄러운 친일의 기록&lt;2&gt;  보국대·국방부인회 국방헌금 앞장 
&nbsp;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총후보국(銃後報國, 총뒤에서 나라에 보답한다)을 내세우며, 조선 전 지역에 국방헌금을 강요하였다. 양양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연일 전국의 국방헌금 현황을 기획기사로 다루면서, 최고의 찬사로 헌금을 독려하고 나섰다. 속초와 양양지역에서도 남자들은 강제 노역을 한 근로수익금으로, 여자들은 공연 입장권 판매, 폐품 수집 판매, 감자가루 등 농산물 판매 수익금으로 국방헌.......]]></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3:50:26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양양,속초,친일,국방헌금]]></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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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항일의 고장, 부끄러운 친일의 기록<1>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18>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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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18&gt; 항일의 고장, 부끄러운 친일의 기록&lt;1&gt;  중일전쟁 발발 후 양양지역 친일로 전향 언론이 앞장서 친일 선도, 항일사회운동 전멸 
&nbsp;       &nbsp;  
&nbsp;
기미년 만세운동과 청년운동, 농민운동으로 항일 대중운동의 맥을 이어오던 양양군은 안타깝게도 1932년을 기점으로 모든 운동이 좌절되고 말았다. 전 양양의 대중적인 지지를 받던 양양농민조합을 와해시키기 위해 일제는 1932년 4월부터 8개월 동안 무려 4백50여명의 양양농민조합 조합원을 붙잡아 취조하여 이중 56명을 정식재판에 회부하였다. 작심하고 진.......]]></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3:49:31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양양,중일전쟁,친일]]></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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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1930년 양양 대흉년(2)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1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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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17&gt; / 1930년 양양 대흉년(2)  수업료 체납 절반 넘고 퇴학생 속출 자작농 몰락 소작농 급증, 농촌 붕괴 
&nbsp;       &nbsp;  
&nbsp;
1932년 최악의 대흉년, 양양 농민의 참상은 어떠했을까. 1932년 4월 22일 조선일보에는 양양군 서면의 한 농민의 이야기가 사례로 보도되었다. 
이제 양양에서도 재해가 심한 서면 가라피리 양지석(梁知石,二六)이란 재민에게 참혹한 정상의 일단을 듣건대, 그의 가족은 노부와 자기 내외와 어린 것 등 네 식구인데 삼림보호구간 등살에 예전부터 부쳐오던 화전은 금지를 당하고 논 닷마지기.......]]></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3:48:56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양양,1930,대흉년]]></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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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1930년대 양양대흉년<1>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16>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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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16&gt; - 1930년대 양양대흉년&lt;1&gt;  초근목피로 연명 기아농민 수천·유랑걸인 수백 수년째 양양 대흉년, 1932년 최악의 해 
&nbsp;       &nbsp;  
&nbsp;
1936년 병자년 대홍수로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면, 이보다 앞선 1932년은 사상 최악의 흉년으로 많은 농민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수천명의 유랑민이 발생한 해였다.
수년째 계속되던 양양지역의 흉년은 1931년 가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1931년 여름에는 장마와 냉해 등으로 해가 들지 않고 냉랭한 기후가 계속되어 농작물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특히 9월.......]]></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3:48:27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양양,1930,대흉년,부황병]]></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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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조선 최악의 재난 - 1936년 병자년 양양군 수해<2>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15>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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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15&gt; 조선 최악의 재난 - 1936년 병자년 양양군 수해&lt;2&gt;  수해 1년 후 양양 합동 초혼제, 모두 584명 사망 양양읍 연창리 부근에 초혼비 세워 
&nbsp;       &nbsp;  
&nbsp;
병자년 수해로 인한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 사상 유래 없는 수해의 전국 피해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다. 피해가 최종적으로 집계되지 않은 1936년 9월 3일, 조선중앙일보에는 전 조선의 수재(水災) 현황을 보도하였다. 당시 경무국 조사에 의하면 사망자 2천43명, 부상자 2천3백28명, 행방불명 1천2백38명으로 인명사상만 5천6백9명에.......]]></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3:47:5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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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조선 최악의 재난 - 1936년 병자년 양양군 수해<1>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14>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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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14&gt; - 조선 최악의 재난 - 1936년 병자년 양양군 수해&lt;1&gt;   양양에서 사망·실종자만 550여명…이재민 수천명 굶주려 
&nbsp;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여름철 장마를 비롯해 집중호우와 태풍은 우리 지역에 많은 재난을 가져왔다. 2002년 8월 23일 지역을 강타한 태풍 루사의 기억이 생생하다. 전국적으로 태풍 루사의 피해 규모는 사망 124명, 실종 60명, 이재민 2만7천여 세대, 8만8천여 명에 달했다. 특히 피해가 큰 양양은 도로가 끊어져 산간마을이 완전 고립되었으며, 하천변의 가옥들은 모두 침수되어 파손되었다. 많은.......]]></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3:47:23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양양,1936,병자년수해,수해]]></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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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양양 부잣집에 무장단 침입, 군자금 내놓아라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13> ]]></title>
							<link>http://hisokcho.com/11008196181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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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13&gt; "양양 부잣집에 무장단 침입, 군자금 내놓아라“  조선청년으로 뉘 아니 조선독립을 원치 않겠소” 6개월 후 체포된 동료 복수하려고 다시 침입 
&nbsp;         &nbsp;
1925년 6월 양양의 부잣집에 침입하여 군자금을 내놓으라고 협박한 무장단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된 사건이 발생해 전국적으로 눈길을 끌었다.
&nbsp;
1925년 8월호 『개벽』에는 양양의 무장단 침입 사건을 다음과 같이 상세히 보도하였다. 무장경관 총출동으로 한 때 총전석전(銃戰石戰)의 경사(驚事)가 있었다. 무장단원 2명이 양양에 들어와 지.......]]></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3:45:48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양양,군자금,조선독립]]></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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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납북어부·가족 고충 민원 상담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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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id>http://hisokcho.com/110081961721</guid>
							<description><![CDATA[ 
납북어부·가족 고충 민원 상담  
납북어부·가족 고충 민원 상담
국민권익위원회, 속초 16일·고성 17일…설문·민원접수 
&nbsp;       납북으로 피해를 본 어부들과 그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구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속초·고성지역에서 설문 및 민원상담, 고충민원 접수의 자리를 마련했다. 
납북피해자 설문 및 민원상담은 오는 16일 오후 2시에는 속초문화회관 소강당에서, 17일 오전 10시에는 고성군 거진읍 고성군수협 회의실에서 열린다.&nbsp;&nbsp; 
이 자리에서는 납북피해자 권익보호 및 증진을 위해 설문 및 민원상담이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현행 납북피해자 보.......]]></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3:44:17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납북어부,국민권익위원회,납북피해자]]></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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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꿈을 찾아 팝의 본고장 영국으로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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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꿈을 찾아 팝의 본고장 영국으로  
속초 출신 팝아티스트 이이(Lee Lee)…런던서 공연·음반작업 
대한민국 음악대향연으로 국내 데뷔 예정 
&nbsp;      행복이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사람은 꿈과 열정만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다. 어린 시절 키워온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무작정 팝의 본고장 영국으로 건너간 청년 이이(Lee Lee). 그는 이런 점에서 행복한 사람이다.&nbsp; 
국내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그의 음악은 세계적인 온라인 음악 서비스사인 아이튠(iTune)을 통해 만날 수 있다. Fight for love, Acid Love, Gone, Shake Shake Shake. 그의 음악은 가볍게 경쾌한 풍의 팝댄스에서 잔잔한 감성.......]]></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3:42:15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이이,LeeLee,팝아티스트,대한민국음악대향연]]></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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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어린 학생들의 항일운동과 일제의 탄압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12>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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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12&gt; 어린 학생들의 항일운동과 일제의 탄압  
일본천황 은혼식 앞두고 단체로 태극기 제작 
일본인 교사 배척 동맹휴학…경찰과 교장 공모해 소년회 학생 탄압 
&nbsp;         &nbsp;
일제시대 우리 지역의 10대 어린 학생들은 일제의 강제통치와 주권침탈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어린 학생들이라 세상 일에 무슨 생각이 있었겠느냐 싶지만 그렇지 않다. 1925년 5월 10일 은혼식 날, 대포공립보통학교의 태극기 제작 사건은 당시의 어린 학생들조차도 항일의식이 대단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은혼식(銀婚式.......]]></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3:40:47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항일운동,양양,양양공립보통학교,태극기]]></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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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일제시대 우리 지역 발명 이야기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1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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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11&gt; / 일제시대 우리 지역 발명 이야기  
리경식(양양), 선박·계산기·펌프·터널굴착기 등 발명 
지역발명가, 시비기·무동력 기관도 발명 
&nbsp;         &nbsp;
1930년 초 신문에는 발명이야기가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뤄졌다. 발명품의 유용성을 떠나서 조선인이 발명 특허출원을 했다고 하면 큰 화제거리로 주목되어 발명가의 사진과 발명품의 도면까지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러한 발명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당시의 물산장려운동, 발명장려운동과 무관하지 않았다. 
물산장려운동은 일제의 경제 침략에 맞서 조선인의 산업을.......]]></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3:39:50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리경식,일제시대,발명,김상진,김창옥,기통,원동륜차]]></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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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돌감자들, 대청봉에 오르다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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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돌감자들, 대청봉에 오르다  
돌감자들, 대청봉에 오르다
장학회, 희망·용기 주는 산상 기념식 
박무웅 회장 등 33명 
&nbsp;         &nbsp;
돌 위에 감자꽃을 피우자. 
산비탈 돌 틈 사이에서 어렵사리 예쁜 꽃을 피우는 감자꽃. 배고픔을 달래주는 양식이 되는 돌감자 같이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자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자는 취지로 발족한 돌감자장학회. 그 뜻 깊은 34회 기념식이 지난&nbsp; 6일 오후 1시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 정상에서 열렸다. 
이날 일흔을 앞둔 장학회 박무웅(69세, 속초시 도문동 거주) 회장과 친우들, 멀리 캐나다에서 귀국한 가족, 어린 초등학생.......]]></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3:39:12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돌감자,돌감자장학회,대청봉,박무웅]]></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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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세계최고 정어리 어장과 속초(2)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10>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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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10&gt; - 세계최고 정어리 어장과 속초(2)  일본 대재벌 정어리기름 독점 가격하락생산업자·어민·노동자 곤궁에 빠져
&nbsp;       &nbsp;
세계대공황 시절이었던 1931년 조선총독부 식산국(殖産局)에서는 당시 최고의 신흥 산업이었던 온유비업과 관련하여 소위 일수판매제(一手販賣制)라는 방식의 통제판매계약을 강제적으로 시행했다. 정어리기름(온유)은 일본의 경화유 가공회사의 연합체인 ‘합동유지(合同油脂) 글리세린 주식회사’가, 기름을 짜고 난 온박은 일본 굴지의 대재벌인 삼릉(三菱)이 독점 매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온유.......]]></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2:44:48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속초항,정어리,일제시대,1930년대]]></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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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세계 최고의 정어리 어장과 속초(1)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9>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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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9&gt; - 세계 최고의 정어리 어장과 속초(1)  
&nbsp;풍어냐 흉어냐 정어리 어획 따라 희비 엇갈려 
1930년대 주민들 정어리로 먹고 살아 …기름 짜는 가공공장 80여개 
&nbsp;       &nbsp;
1936년 1월 23일자 동아일보 ‘영동처녀지 6郡 산업의 현장’ 특집에는 다음과 같이 속초항의 풍경을 실은 기사 내용이 실렸다. 
몇일 동안 날씨가 좋고 바다가 고요하였던 덕분에 눈치잡이배가 들어왔는지 해변모래벌에는 별안간 눈(雪)이 온 것처럼 은(銀)빛 비늘을 번쩍이며 수없는 생선이 잡혔고 혹은 지게를 지고 혹은 동이를 인 남녀 생선.......]]></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2:43:17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속초항,정어리,1930년대,일제시대]]></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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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속초항은 어떻게 개발되었나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 <8>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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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 &lt;8&gt; - 속초항은 어떻게 개발되었나  1930년대 청초호 수로·항만 개발…인구급증
&nbsp;       &nbsp;
동해안의 대표 어항인 속초항은 속초의 생명줄이었다. 6.25 전쟁 후 북에서 남하한 실향민과 전국 각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속초에 모여 들었던 데는 바로 동해안 수산업 전진기지였던 속초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후 척박한 그 시절 누구라도 수산업 경기가 좋은 속초에 오면 품을 팔아서라도 먹고 살 수 있었기에 속초는 가난한 사람들이 정착한 삶의 터전이었다. 이로 인해 수복 후 10여년만인 1963년 속초시는 인구가 급격.......]]></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2:42:30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속초항,속초,속초항개발]]></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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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프리랜서 돋보기 - 동서고속화철도 조기착공은 가능한가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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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프리랜서 돋보기 - 동서고속화철도 조기착공은 가능한가  
동서고속화철도 조기착공은 가능한가
국가철도망 동서축 중 가장 유력하나 걸림돌 많아 
&nbsp;         &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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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 온통 현수막 물결이 넘치고 있다. 동서고속화 철도 조기착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속초시 인구의 절반인 4만3천여명의 서명부가 한승수 국무총리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이달내로 지난해 5월 국토해양부가 3억원의 예산으로 한국교통.......]]></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1:39:10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동서화고속철도]]></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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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대포 출신 박제범과 아버지 박영수 이야기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7>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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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7&gt;&nbsp;&nbsp;- 대포 출신 박제범과 아버지 박영수 이야기  &nbsp;독립운동하는 아들에게 아버지 죽었다 전하지 말라 
&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눈감으며 하는 유언(遺言)독립운동으로 표랑하는 아들나 죽었다는 말을 전하지 말라고최후까지 부탁하는 부친 심사(深思) 
강원도 양양군 도천면 대포리 박제범군(24세)은 본래 독신으로서 일찍이 모친을 여의.......]]></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1:38:20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박제범,박영수,독립운동,일제시대]]></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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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80여년전 우리 지역의 풍류와 풍광(3)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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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6&gt; - 80여년전 우리 지역의 풍류와 풍광(3)  설악산, 1933년 노산 이은상 신문연재로 널리 알려져&nbsp; &#57791; 
&nbsp;       &nbsp;  
&nbsp;
설악산은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나 지금은 설악산의 존재를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지만 1920, 30년대는 설악산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국립공원으로 전 국민의 휴식터가 된 설악산이 언제 처음 세상에 알려졌을까. 조선시대 세조의 권력찬탈에 통분하여 중이 되어 전국을 방랑했던 매월당 김시습이 내설악 오세암의 전신인 관음암에 머물렀다하며, 숙종 때의 대학자 삼연 김.......]]></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1:37:13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설악산,설악행각,노산이은상]]></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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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80여년전 우리 지역의 풍류와 풍광<2>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5>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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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5&gt;&nbsp; - 80여년전 우리 지역의 풍류와 풍광&lt;2&gt;   “설악산·낙산사·하조대 등 명승고적 즐비” 
&nbsp;         &nbsp;
양양팔경가, 연변과 멀리 카자흐스탄까지도 2005년 양양군수가 연변지역을 방문해 연변조선족자치주 초등학교 조선어문 교재에 양양팔경가가 실려 있는 것을 확인해 화제가 되었다. 양양의 어른들이 어렸을 때 배웠던 양양팔경가는 남북의 분단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연변조선족, 심지어는 러시아를 거쳐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사이에서도 불려졌다. 
북한의 자료에 의하면, 양양팔경가는 1930년대 작곡.......]]></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1:36:34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양양팔경가,양양,최관수]]></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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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80여년전 우리 지역의 풍류와 풍광(1)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4>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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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4&gt; - 80여년전 우리 지역의 풍류와 풍광(1)   
양양 연창탁주·황어회·단오놀이·오색약수 소개 
1927년 양양공보교서 열린 재경양양학생친목회 연극공연에 1,500명 몰려 화제 
&nbsp;       양양명물, 연창탁주와 황어회 
지난 4월 11일과 12일 이틀간 양양 남대천에서는 제1회 황어축제가 열렸다. 양양하면 송이와 연어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지금으로부터 80여년전인 1920년대에는 송이와 연어 이야기는 없어도 양양의 황어회는 유명했다는 기사가 있다. 세월이 흘러도 남대천의 자연생태는 변하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새로움이 느껴.......]]></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1:35:27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양양,연창탁주,황어회,단오놀이,오색약수]]></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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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납북귀환어부 피해사실 조사한다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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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납북귀환어부 피해사실 조사한다  
납북귀환어부 피해사실 조사한다
진실화해위원회, 한국전쟁 민간인 집단희생 조사도 진행
&nbsp;       &nbsp;  
&nbsp;지난 10일 속초시청서 조사원 교육 실시 납북어부 조사 대상자 설악권이 절반 이상 
&nbsp;
납북귀환어부에게 가해진 인권유린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질 수 있을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악권 지역을 포함한 전국의 납북어부 피해에 대해 기초사실 조사작업을 시작했다. 국가 기관이 납북어부 피해를 조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번 조사작업이 설악권 지역의 대표적인 인권유린 과거사인 납북어부피해문제를 해결하는 계.......]]></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1:33:36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납북귀환어부,진실화해위원회]]></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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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1> 도심 속 생태공동체, 서울 마포 성미산 마을 - 주민운동 현장을 찾아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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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주민운동 현장을 찾아서 &lt;1&gt;-&nbsp;도심 속 생태공동체, 서울 마포 성미산 마을&nbsp;  공동육아에서 출발 먹거리·환경·지역공동체 운동으로 
&nbsp;       &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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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부터 월 1회&nbsp; 엄경선 프리랜서 기자의 &lt;주민운동 현장을 찾아서&gt;를 연재합니다. 전국의 주민운동 현장을 직접 찾아 주민들 스스로 지역 공동체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다양한 모습을 담아낼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1:26:01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마포,성미산마을,주민운동현장]]></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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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만세운동 후 양양의 청년들은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3>]]></title>
							<link>http://hisokcho.com/11008195529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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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3&gt; - 만세운동 후 양양의 청년들은  “사회주의 청년·농민·노동운동 활발 그 격렬함 전 조선적으로 손색없어” 
&nbsp;       &nbsp;
많은 희생자를 냈던 1919년 양양의 만세운동이 끝나고 지역의 청년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일을 했을까. 
당시의 신문과 기록을 통해 보면 만세운동이 끝난 지 만 3년만인 1922년 처음으로 양양지역에 청년운동 단체가 결성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1938년 일제의 치안상황 자료에 의하면 김대봉과 오일영, 장세환, 박상희 등이 1922년 한구(漢口)청년회(후에 호산청년회로 바뀜)를 결성했는데, 일.......]]></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1:24:42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만세운동,양양,청년활동,조선청년동맹,물치농조,물치차부조합,조산농조,양양신청년동맹]]></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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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  1925년 친일대동단 친일연설 반발사건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2>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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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2&gt; -&nbsp; 1925년 친일대동단 친일연설 반발사건  
시국대동단 친일연설에 양양 청년들 분개 
친일연사, 때릴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 비난 
&nbsp;         &nbsp;
1925년 1월 일제의 종교탄압을 피하려는 보천교에서는 일본과 조선이 화합해 어울려야한다는 일선융화(日鮮融化)를 주장하는 시국대동단을 결성하고 전국적으로 친일 강연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강연회는 지역의 청년· 노동단체의 반발과 실력저지로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다. 양양군도 지역청년들의 반대로 강연회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으며, 이 사실은 당시 신.......]]></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1:23:36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양양,1925년,박해원,친일연설,시국대동단]]></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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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1920~30년대 대포항에서는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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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 그 시절 설악에는 무슨 일이 - 신문 기사로 읽는 우리 지역이야기&lt;1&gt; - 1920~30년대 대포항에서는  
지역주민들 일본인과 개발 주도권 갈등 
노동조합 결성으로 구속·무죄 석방…면사무소 이전 맹렬 반대 
&nbsp;       &nbsp;
대포시장으로 도천면민대회 일본인의 경영을 견제 사업진행은 우리 손에
강원도 양양군 도천면 대포리 빈해디(江原道 襄陽郡 大浦里 瀕海地)사건에 대하여서는 이미 본보에 보도하였는바 이제 비로소 그곳에 시장을 설치코자 한다는데 그 전말을 듯건대 대포리에 거주하는 일본인 이십명 가량이 번영회(繁榮會)를 조직하고 정신업는 조선사람 몃사람을 속이어 도.......]]></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1:16:42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대포항,1920년대,대포]]></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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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납북어부 고문 피해 보상 신청 관심 집중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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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납북어부 고문 피해 보상 신청 관심 집중  
납북어부 고문 피해 보상 신청 관심 집중
아야진 김수성씨, 납북 후 고문 받아 양쪽 귀 고막 파열 
&nbsp;         &nbsp;
40년 전 납북되었다 돌아와 국가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받아 상이를 입은 납북피해자가 피해 보상금을 신청해 그 처리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고성군 아야진에 거주하는 김수성씨(62세)는 지난 2월 23일 통일부 산하 납북피해자지원단에 공권력에 의해 고문을 받아 상이를 입었다며, 납북피해자 보상금 및 의료지원금 신청서를 접수했다. 20대의 나이에 거진읍에 살았던 김씨는 일반선원으로 승선해 지난 1967년과 1968년.......]]></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1:13:58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납북어부,고문피해,보상신청,김수성,납북피해자지원단]]></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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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청대산 정상, 문화재 발견 불구 공사로 훼손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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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청대산 정상, 문화재 발견 불구 공사로 훼손  
청대산 정상, 문화재 발견 불구 공사로 훼손
정자 공사 마무리 위해 공사 강행한 듯 … 고려 때 기와 등 발견, 내년 봄 발굴 예정 
&nbsp;         &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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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욕장 조성사업이 진행 중인 청대산 정상에서 고려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와 청자, 토기 조각 등 매장문화재가 발견되어 공사 중지 명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자.......]]></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0:56:28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청대산,속초,청대산정자,고려시대기와]]></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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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동해안 납북어부의 삶과 진실’ 출간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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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동해안 납북어부의 삶과 진실’ 출간  
'동해안 납북어부의 삶과 진실’ 출간
설악신문사, 납북어부 문제 총체적 접근 시도 
&nbsp;         &nbsp;
동해안에서 발생한 어선 피랍과 납북어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출간됐다. 설악신문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지난 7일 ‘동해안 납북어부의 삶과 진실(엄경선·장재환 공저)’을 출간했다.&nbsp;&nbsp;&nbsp; 
이 책에서는 납북사건으로 인해 동해안 납북어부들과 그 가족이 겪었던 한 맺힌 삶을 통해 우리 지역의 시대적 아픔을 진단하고, 납북어부 문제에 대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였다. 
특히 지난 195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당.......]]></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0:52:53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동해안납북어부의삶과진실,발간,설악신문사]]></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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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sorak</author>
							<category><![CDATA[설악신문 기사]]></category>
							<title><![CDATA[실향민의 보금자리, 아바이마을의 미래 <4> - 설악에서 희망을 찾는다 <10>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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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설악에서 희망을 찾는다 &lt;10&gt;&nbsp;- 실향민의 보금자리, 아바이마을의 미래 &lt;4&gt;  아바이마을의 가능성 실향민 문화와 관광이 접목되는 공간 
&nbsp;         &nbsp;
상상해 보는 테마관광 
“갯배를 끌어타고 아바이마을로 들어왔다. 낯설은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을 둘러본다. 좁은 골목길 낡은 담벼락을 따라 닥지닥지 붙어있는 집을 찾아갔다. 골목길로 들어가 아바이마을 옛집을 그대로 살린 갤러리와 미술관, 박물관에 들렀다. 마을 옛 모습과 아바이들의 생활을 담은 사진과 그림이 잔잔한 느낌을 전해준다. 점심은 식당에서 함경도 전통음식인 냉면.......]]></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0:51:57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아바이마을,실향민,실향민문화,관광]]></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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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실향민의 보금자리, 아바이마을의 미래 쥳 - 설악에서 희망을 찾는다 <10>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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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설악에서 희망을 찾는다 &lt;10&gt; - 실향민의 보금자리, 아바이마을의 미래 쥳  
사진작가 엄상빈의 아바이마을 생각 
“마을에 문화예술공간 만들고 싶다” 
&nbsp;         &nbsp;
속초에는 아바이마을이 있다&nbsp; 
10년 전 나는 오래되어 낡고 바랜 듯한 사진집을 한 권 산 적이 있다. 이제 다시 그 사진집을 들여다보니 지금은 돌아가신 아바이 한 분이 적적한 표정으로 서 계셨다. 엄상빈 사진작가(55세)의 ‘청호동 가는 길’이다. 1983년부터 15년 동안 아바이마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온 그가 당시에 어렵게 만들어낸 사진집이다. 
그를 만났다. 아직도 그는 카메라 앵글로 마을을 들.......]]></description>
							<pubDate>Fri, 05 Mar 2010 10:51:10 +0900</pubDate>
							<tag><![CDATA[설악신문,엄경선,아바이마을,실향민,엄상빈,사진작가,청호동가는길]]></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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